2003. 4. 4. 09:11


▲ 1976년 오리지날 로보트 태권V의 OST 포스터  

27년만에 다시 살아난 <로보트태권V>
휴머니즘과 환경친화적 감성

김지수 기자

1978년 영국의 과학자 J.러브록은 《지구상의 생명을 보는 새로운 관점》이라는 저서에서 가이아 이론을 주장하였는데, 이는 지구를 환경과 생물로 구성된 하나의 유기체로 본다는 이론이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지금 지구생명체의 몸 한구석인 중동지역은 온통 벌집 쑤신 듯 몸살을 앓고 있을 것이며, 그 병원균과 상처가 또 어디로 감염될 지 매우 위급한 상태일 것이다.

J.러브록이 이러한 가이아 이론을 주장하기 2년 전에 동양의 어느 젊은 애니메이션 감독이 휴머니즘과 자연 친화적 사고를 가진 로봇이 지구를 악의 병원균으로 만연시키려는 세력과 맞서 싸운다는 이야기를 완성하였다. 그가 바로 한국의 김청기 감독이며, 그 걸작의 이름은 <로보트 태권V>였다.

1993년도에 완성된 영화 서편제마저 그 원본 필름이 손상된 한국의 영화현실에서, 27년 전 개봉하였던 일개 만화영화( 당시 20일만에 28만명이 동원되었다지만)의 온전한 보존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러나 <태권V>를 보고 자란 386세대들에게 그 복원은 그들만의 절실한 문화유산 지키기였는지 드디어 각고의 노력과 고군분투에 힘입어, 비록 100% 노커트 버전은 아니지만 국보급 애니메이션 태권V는 더 이상은 훼손될 수 없는 디지털 신호로 안전하게 DVD안에 안착되고 우리 앞에 선보였다.

새로 복원된 DVD는 태권V 1편과 84태권브이 그리고 슈퍼로봇태권브이 이렇게 3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오리지널 1편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눠보자.

지난 20세기의 한국의 히트상품 영상물 중에 <모래시계>, <서편제> 그리고 <여로>와 더불어 <로보트태권V>가 당당히 그 반열에 올랐던 영광이 있었다. 태권V가 지난 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화두로 회자되는 이유는 단지 386세대들의 추억을 반추하는 영상물이라서가 아니다. 또한 우리만의 고유성에 집착한 과도한 애국주의적 비약도 아니다. 태권V는 분명히 각광받고 재조명 받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휴머니즘의 권고

<태권V>와 마찬가지로 사랑을 받아왔던 <마징가 Z>, <건담>, <짱가> 등의 여타 메카닉 만화들을 보면 선과 악의 대립이 극명하다. 악은 그저 태생적인 악에 불과하다. 그리고 선은 악을 무찌르고 뿌리뽑는 역할에 고정된다. 악의 로봇이 파괴되면 어린이들은 환성하고 만화는 끝이 난다.

DVD의 서플먼트에 있는 김청기 감독의 인터뷰에서 김 감독은 당시 <태권V> 제작시에 이러한 단순한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회고한다. 그는 악도 분명 악이 된 사연이 있고, 꿈 많고 순수한 어린이들의 동심에 절대악을 심어주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1편의 악의 상징인 카프박사와 그의 딸이자 사이보그인 메리에게 인간적인 감성을 심어주었다.

영화 내용 중에 윤박사의 탈출을 도와주는 메리에게 윤박사가 다음과 같이 묻는다.

“너는 도대체 왜 나의 탈출을 도와주는가?(다시 말해서, 같은 편이 아닌데)

그러자 메리가 약간 울먹이며 이렇게 대답한다.
“ 뭔지 모르지만, 훈이와 영희에게서 인간의 사랑 같은 것을 배웠어요”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일까? 27년 전의 아동을 위한 만화영화에 휴머니즘을 느끼는 악의 로봇을 생각할 수 있었다니.. 결국 메리는 악의 기지 폭발과 더불어 그 형체가 한 줌의 재가 되지만 훈이의 손에 그녀의 따뜻한 마음씨를 담고 있는 기계심장이 놓여있는 장면을 영화 후반부에서 발견하면서 제 2편의 인간적인 메리의 부활을 예견할 수 있다.

할리우드에서도 인간적 메카를 다룬 것이 있다면, 만화영화는 아니지만 최근 스필버그의 A.I에서, 로빈윌리엄스가 주연했던 바이센테니얼 맨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근대과학의 종주국인 미국도 우리보다 한 참 뒤에야 영화 속의 아이디어로 쓴 것이다.

환경친화적 분위기의 모색

또한 인터뷰에서 김 감독은 이러한 휴머니즘과 더불어 자신의 삶의 한 방편이기도 한 자연주의적, 환경친화적인 기운의 모색에 신경을 썼다고 한다. 로봇만화와 환경친화?

비록 태권브이에서 직접적으로 지구 온난화나 거대 도시화로 인한 자연환경의 파괴 등과 같은 주제를 직접 다룬 것은 아니지만, 영화 곳곳에 아름다운 배경과 조연으로 등장하는 대자연의 모습과 새들의 지저귐은 인간적인 태권 V와 더불어 금속로봇의 찬 기운과 기름냄새 그리고 전장의 공포스러운 화약 내음을 중화시킨다.

특히, 훈이를 가운데 두고 영희와 삼각관계(?)에 있던 사이보그 메리가 훈이와의 사랑놀음을 상상하는 장면은 김 감독이 만화영화계로 진출하는데에 큰 영향을 미쳤던 디즈니 만화영화 피터팬의 한 장면과도 흡사한데, 여기서 훈이와 메리는 무지개를 타고 대자연의 숨결을 만끽하면서 숲속과 하늘을 날아다닌다.

인간과 로봇의 정신적 일체감

태권브이와 악의 로봇들이 결투를 벌이는 장면 또한 잔혹하고 파괴적인 공격성을 배가시키는 비교육적 악취가 나는 것이 아니라 마치 태권도 유단자인 태권 V의 숙련된 무술 시범을 시원하게 감상하는 느낌이다. 이는 만화영화 장르에서 세계 최초로 조종사의 감정과 로봇이 일체가 된다는 아주 기발한 장치를 태권V에서 창출하였기에 가능한 것이였다.

로봇과 인간이 하나가 된다는 설정은 로봇메카의 원조인 일본에서도 거장 안노 히데야끼의 에반겔리온을 통하여 뒤늦게 선보였다.

이처럼 27년 전에 구현된 우리의 <로보트 태권V>는 대부분 일본만화영화의 하청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당시의 현실적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만의 독창성과 작품성을 확보한 수작이라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21세기 버전의 <태권V> 후속작이 다시 김청기 감독을 총책임으로 하여 만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과연 과거의 영광과 명예가 새로운 작품에서도 이어갈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으나 극영화나 다른 영상물에 비하여 적잖이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한국 애니메이션 계에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제시할 수 있는 거듭난 <태권V>로 재탄생하기를 기대한다.  

2003/04/03 오전 5:34
ⓒ 2003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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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다시 보고 싶다..DVD를 살까?
그 시절 우리에겐 감동의 도가니탕이었쥐..^^;
늦었지만 이렇게 재평가 받는 애니메이션이 한국에 있음이 뿌듯하다..
Posted by 아가여우